엘렌 케이, "어린이의 세기"

by 관리자 posted May 31, 2015 Views 776 Replies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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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세기.jpg


인연이라는 단어를 사람과 사람사이에만 쓰는 건 너무나 한정적이고 협소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떤 장소와의 인연, 시간과의 인연, 사건과의 인연, 혹은 우연이나 필연 등...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 모든 인연의 연속이 아닌가.

또한 인연이라는 것은 묘해서 일어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일단 일어난 후에는 그 모든 일들이 이미 정해져 있었었고, 이 인연이 일어나기 위해 그전의 모든 일이 그리 되어갔던 것 같은... ㅎㅎ 그래서 소쩍새는 그리도 울었나보다라고 말 하게 되는 그런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마치 내가 2012년 여름, 뜨거운 태양을 뚫고 홍대앞에 위치한 지만지 출판사 인문학 수업을 들으러 간 것도,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이의 세기"라는 나로써는 대단한 양서를 만나게 된 것도 모두 지금생각해 보면 우숨터가 있기 위해 부러 정해놓은 수순이었고, 나는 그저 그 수순을 그냥 천천히 순조롭게 밟아오는 것으로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해왔을 뿐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처럼..


그런 면에서 우숨터는 엄밀한 의미로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책, "어린이의 세기"가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이 책과의 인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어린이의 세기"는 그만큼 우숨터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숨터 도서목록의 가장 핫하고 가장 매력적인 도서로서의 자리를 도도하게 유지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스웨덴에서 유명하지도 않은 한 여류작가가 쓴 바로 이 책이 말이다....^^





"교육의 가장 큰 비밀이 바로 교육하지 않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p.29)


이 책과 처음 만났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마음속 깊은 곳,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곳에 꿈틀거리고 있던 바로 그 욕망이 딱딱하게 덮여있는 두꺼운 콘크리트 대지를 뚫고 시원스럽게 하늘위로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랄까. 


세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의 놀라움, 경이로움을 발견하기 보다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아이들을 막고 제지하고 길들이고 심지어는 난도질하며 혼란에 빠뜨리는 것 같은 느낌, 교육이라는 행위를 하면 할 수록 더 나아지기는 커녕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을, 이전의 나는 이해할 수도, 또 설명할 수도 없었다. 설명할 수 없기에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어린이의 세기는 이런 나에게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해 주며,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네가 옳기까지 한걸"이라는 묘한 확신까지 내게 불어넣었으니, 어찌 전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때 부터 나는 현 교육적 환경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더이상 외면하지 않고, 그저 맞추고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 대신에, 교육에 대한, 육아에 대한,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뜨거운 욕망을 직시하고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 힘을 싣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처를 주어야만 하는 너무나 큰 모순을 해결하고 싶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만큼 그 관계에 대해 올바른 관점과 지향을 가지고 나아가고 싶었다. 어린이의 세기는 이런 내게 너무나 든든한 친구이자 후견인이 되어 주었고, 이러한 내 욕망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지, 차츰차츰 함께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지금 우숨터가 탄생하게 된 스토리.. 


이제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을 통해 보다 많은 분들께,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께 이 책을 소개해 드리고자 하니, 감개가 무량하고 처음의 그 설레임이 되살아 나는 것 같습니다. 부디 이 책과의 만남을 통해 제가 느꼈던 그 감동을 여러분도 느껴보시길...  ^^






책 소개....



"어린이의 세기가 1900년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을 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2년후 독일에서 독일어본이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독일에서 수십만권이 간행되었으며, 특별히 교육과 학교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책 제목이 그 시대를 대변하는 표제어로 인식됨으로써 당시 독일 및 유럽에서 전개된 교육개혁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 케이는 우선 어린이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어린이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케이에게 교육의 목적은 각 어린이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체로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케이가 개인주의적 교육학을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케이는 개인주의에 머물지 않고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것의 해결책으로서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적 교육을 제시했다. 이와같은 어린이의 개체성 발달을 목적으롤 보는 케이의 교육이해로부터 교육의 본질적인 원칙, '스스로 성장하게 함'의 원칙이 나온다.... '스스로 성장하게 함'의 교육은 극단적인 의미에서 무관심한 방임이나 교육의 부정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식적인 영향이 내재된,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교육학적 행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해설 중에서..)



제목:어린이의 세기(Das Jahrhundert des Kindes)

지은이 : Ellen K. S. Key

옮긴이: 정혜영

출판사: 지식을 만드는 지식

가격: 12,000원





2015.6.1. 우숨터하우스로부터...^^

Comment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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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 2015.05.31 23:42
    만일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가 만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외로 인해 전율을 느끼고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를 겸허하게 최선을 다해 봉사해야하는 왕자로 본다면 어린이는 스스로 권리를 획득할 것이다. 그것은 타인을 자기 기분의 노리갯감으로 만드는 권리가 아니라, 충만한 개인적 삶을 살고 있는 한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충만하고 강하며 개인적인 어린이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부모의 충만한 개인적인 삶의 원천과 활력으로부터 자녀는 자신만의 고유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어린이의 세기 p.78-
    아이도 나도 미완성인 삶, 부모인 내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미완임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삶을 이루어가는 길을 아이와 함께 간다는 느낌이 와요~꽉 잡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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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06.08 23:15
    불완전함을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것이 '포기' 혹은 '타협'의 다른 말로 해석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도그럴것이 보다 완전하게를 목표로 앞으로 내달리는 현대사회에서, 불완전함이라는 단어는 이미 그 자체로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을 향해 쓰는 '불완전함의 수용'은 그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느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의 겸허한 수용과도 같다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때의 불완전함은 '포기'보다는 '존중'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존중받는 아이는 충만합니다. 존중받을 만 해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존재자체로 이미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그런 상태를 우리는 진짜 존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진짜 존중을 받는 아이... 우리는 아이를 그냥 존중하는 것이 아닌, 진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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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은울타리 2015.06.01 20:15

    맞아! 이거야! 확인받는 느낌으로 단숨에 읽었던 책. 그 중, 한 구절-
    "어린이들의 실수 앞에서 열 번 중 아홉 번을 눈감아 주는 것, 직접적인 간섭을 경계하는 것, 그 대신에 어린이가 성장 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 그리고 자기 스스로 행하는 교육에 주목하는 것, 이것이 자연적 교육을 실천하는 기술이다.(중략)
    자신의 고유한 시기에 가장 좋은 것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스스로 계속 성장하는 사람만이 어린이들을 위한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p.31
    계속 무언가를 해야할것 같은 불안한 엄마를 넘어  다만 어린이의 '좋은 동반자'가 될수 있기를, 내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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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카 2015.06.04 20:04

    저도 다시 꺼내 읽으며 체크되어 있던 이 구절을 읽었어요^^
    과연 그런 엄마인가는.... 뭐....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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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06.08 23:21
    좋은 구절이죠. 정말 명언에 가까워요! 그러나 이 구절이 진짜 명언이 된 것은, 그저 아이들의 실수를 눈감아 주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을 하는 사람만이 실수들 조차도 아이 스스로 자각하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따라서 문제는 '아홉번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순간을 어른인 우리가 어떠한 관점, 어떠한 태도로 지켜보는가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살짝살짝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이정도까지 되면 양육은 피곤하고 지친 일이 아니라, 예술이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아름답죠.. 그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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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은울타리 2015.06.01 20:18
    제 컴퓨터에는 책 사진은 엄청 크고 소개글들은 작게 나오는데요,( 제 컴퓨터에만 그런게 아니라면)
    책 사진과 글의 크기 비율이 균형있게 나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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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06.08 23:23
    그러네요! 사진 크기는 조절할 수가 없고, 글씨 크기는 키웠는데... 좀 낫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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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rmata 2015.06.01 23:19
    p.41, 42
    어린이는 감정을 성인들과 같이 전적으로 방해받지 않고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호감을 갖거나 반감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권리다. 성인들의 배려 부족으로 인하여 어린이의 다감한 취향이 손상된 뿐만아니라, 자극받기 쉬운 혐오의 감정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성인의 미숙한 태도로 말미암아 어린이가 겪게되는 고통이 어떠한가에 대한 것이, 아마도 아직 써지지 않은 어린이 심리학의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 만약 어린이가 다른사람에게 부당한 행동을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그러한 행동을 했을 때 괜찮을지를 생각해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일 것이다. 교육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작거나 큰 문제에 있어서

    "내가 나의 어린이를 다루었던 것과 똑같이 나 자신이 취급 되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 동의할 것인가?"

    라고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아마 교육을 이한 가장 좋은 개선책이 될 것이다. 만약 교육자가 어린이는 대부분의 경우에 성인보다 두 배의 강한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어린이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다 부드러운 감정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온유한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때, 어린이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된다.

    *** 큰 아이가 일곱살이던 어느 날 "엄마, 엄마는 나한테 혼낼때에 엄마가 어릴 때 엄마의 엄마한테 혼날 때를 기억하면서 혼내면 안돼?"라고 말했던 그 순간. 아차!! 싶은 와중에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였던 이 한마디 아직도 귓속을 맴돌고 있다.
    항상 아이에게 어떤 가르침보다 내 삶을 먼저 올바르게 잘 살아야 겠다고 다짐하건만 어느 순간 보여주는 것 보다 가르침을 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기위한 시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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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06.08 23:26
    정말 좋은 구절이예요. 줄줄이 감탄하게 되네요! 저 또한 이 구절을 읽은 이후로, 무수한 순간에 "지금 내가 행하고자 하는 바데로 내가 취급되는 것에 동의하는가?"라고 자문했고, 노라는 대답이 나오면 과감하게 멈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완전 도움 많이 되었어요! ^^ 좋은 구절 찾아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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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카 2015.06.04 20:24

    "사랑이 넘치는 부모나 지배욕이 강한 부모, 이 종류의 부모는 물론 방법은 다르지만 자녀들을 똑같이 많이 괴롭힌다.
    즉, 그들은 자녀가 자신의 고유한 인생관과 행복에 대한 이상,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과 일 등을 소유할 권력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 존재하지 않듯이 자녀도 똑같이 부모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
    p.72~73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좀 어렵다.
    머리로나 가슴으로는 알겠는데 입으로나 행동으로는 쉽지 않다....ㅠㅠ
    매일매일 후회하고 깨닫고 수정하고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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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06.08 23:28
    저도 마찬가지여요. 심지어는 막내한테는 "재희는 엄마가 낳으니까 엄마꺼지이?"하는 유치한 농담을 불과 1~2년 전까지도 했다는.. ㅠㅠ
    자녀의 삶을 자녀의 것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날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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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 2015.06.04 23:20
    어린이들이 학교에 올 때 지녔던 앎에 대한 충동과 자발성,관찰능력등은 지식이나 흥미로 전환되지 못하고 학교시기가 끝나면서 대체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대략 6세부터 18세까지의 삶 전체를 학생용 책걸상에서 보낸 결과이다. -p.93

    나의 자발성은 이제 시작인 느낌.
    대입을 위해
    취직을 위해
    내 집 마련을 위해 미루어둔 나의 자발성... 내 아이에게선 조금 더 일찍 발현되길 기대한다면 학습에 대해 너무 많은 미련 갖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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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06.08 23:30
    ㅎㅎㅎ 자발성은 모든 학습, 모든 공부의 시금석이지요!! 자발성을 키우는 것이, 공부잘하는 비결임을 의심하지 말고, 시켜야 하는 노예로 만들지 않겠다는 굳건한 믿음이 필요한 때... *^.~*

    자발성같이 귀한 보석이 그냥 올리 없어요! 숱한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며 올꺼예요!! 각오가 됬나요?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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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회우 2015.06.09 14:55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자유는 가능한 적게 제한되어야 하며, 반면에 다른 사람의 권리가 침범될 수 있는 곳에서는 마땅이 제한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인본성이 학교 안으로 도입되어 학생들이 더 이상 계급으로서 간주되지 않고 각자가 모두 그 자신으로서 간주된다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자양물과 그것을 통한 발달과 행복을 제공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많은 조건들 중의 하나를 성취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린이의 세기(엘렌 케이 저)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정치, 경제적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범할 수 있는 자유는 확대되고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자유는 교묘히 제한되어 있지요. 강자의 권력지향주의, 약자의 무기력한 노예화는 오래 전 잘못된 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자유는 가능한 적게 제한되어야 하며, 반면에 다른 사람의 권리가 침범될 수 있는 곳에서는 마땅이 제한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인본성은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집에서라도 어릴 때부터 교육되어져야 하겠죠.
    부모의 본보기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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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06.11 22:01
    전적으로 동의!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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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내들 2015.06.16 16:00
    `어린이의 세기` 책을 처음 보았을때 작지만 알차다는 생각을 했어요...

    p27
    어린이를 교육하는 일은 잘못이 무마되거나
    잘못이 없을 수는 없는 일이며 오히려 언제나 잘못의 결과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신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인 내가 늘 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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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 2015.06.20 09:39
    p32. 어린이들은 단지 부모가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기분 좋아하는 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다루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존경받을 만하고 쓸모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 일찍부터 노력한다.
    아이는 나와 같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인데 마치 내 가치를 높여주는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 준 구절이었습니다. 아이가 소유하는 것의 조건부로만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보기’, ‘있는 그대로 아이바라보기’를 위한 첫 걸음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p34. 교육자는 어린이에게 모든 사람이 행동하는 대로 모방하도록 충고해서는 결코 안되며, 오히려 그와 반대로 어린이의 빗나가는 성향을 볼 경우에 기뻐해야 한다.
    어떤 길이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 길에 난 발자국이 얼마나 많은지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으면 안전해보이지만 다수의 선택이 꼭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다수와 다른 길을 선택하는 두려움으로 벗어나는 의식변화의 용기를 위해 계속 우숨터속에서 책을 읽으며 지혜를 찾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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